요즘 십 대들이 록을 듣지 않는 진짜 이유

요즘 십 대들이 딱히 록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별로 필요가 없을 뿐이다.

몇 년 전 SNS에 농담 삼아 “콜드플레이가 21세기 록을 망쳤다”고 썼고, “형 미쳤어?”라는 리플을 받았다. 록은 ‘혈기’라는 파이에 ‘어른’이라는 아이스크림을 얹은 것이다. 수많은 로커가 메이저 3, 4집쯤에서 음악적 깊이를 더하고 변신을 시도하면서 아이스크림이 되어간다. 다이어트할 때조차 “부풀린 음식이라서 사실은 칼로리가 높지 않다”는 어느 트레이너의 말을 맹신할 만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만, 콜드플레이는 거의 아이스크림만 있는 존재고 그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 다만 아이스크림을 너무 먹다 보면 밀가루 같은 맛이 나는 싸구려 뷔페 아이스크림도 만나기 마련이다.

본 이베어로 대표되는 실험적이고 거창한 포크가 한동안 득세한 것은 그래서다.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얹은 파이’를 주문하는 건 너무 이상한 일이다. 배스킨라빈스에 가는 기분으로 볼빨간사춘기를 들어도 될 일이다. 혹은 교회에 가고 싶을 때 콜드플레이를 듣는다든지. 아이스크림도 다양한 취향이 있다. 다만 파이에 곁들여져 스며들면서도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뜨겁고 차가운 맛을 원한다면 파이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먼저 말하면 록이 저항의 음악이라는 생각은 정말이지 낡았다. 록을 수입하는 입장이던 국내에는 그 환상이 더 자욱하게 끼어 있다. 록 담론이 한창 각광을 받던 1990년대에도 “낙오자들은 너바나를 듣지 않는다. 주유소에서 터보와 룰라를 듣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간극은 유신이 록을 때려잡은 한국에서, 책으로 록을 익힌 탓도 있다. 진지한 성찰과 깊이 있는 사회적 발언은 대개 아이스크림을 통해 나온다. 하지만 사회학자나 논객이 아닌 로커는 대개 분노, 무책임한 반항으로 시작한다. 당장 흔들고 Rock 구르고 Roll 싶은 마음, 파이의 역할이다. 그런 욕망이 없다면 뭐하러 책 안 쓰고 기타를 잡는 비효율을 택할까.

성숙한 아이스크림 로커들을 지탱하는 것 역시, 별생각 없던 데뷔 시절의 에너지다. 진지한 생각은 로커를 나아가게 하지만, 로커를 태어나게 하는 것은 어쨌든 젊은 혈기다. 록이 ‘청년 문화’인 것도 그래서다. ‘청년’이라고 번역되니 20~30대를 떠올리지만 ‘Youth Culture’라는 원어의 어감은 사뭇 다르다. 그들은 사회에 대한 대단한 통찰 없이 ‘호르몬이 뻗쳐서’ 난동을 부린다. 유투나 콜드플레이가 한국인 록 명예의 전당에 오를 때, 터무니없는 얼치기 로커들이 젊음을 탕진하며 록이라는 아스팔트의 자갈을 깐다.

달리 말하면 록은 십 대가 호르몬을 쏟아내는 창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것은 ‘록의 필요성’에 관한 이야기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의 십 대는 점점 얌전해지는 추세다. (이 형용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코노미스트>는 ‘현명하다’, ‘깨끗하다’ 등의 단어도 제안한다.) 단적으로 범죄율이 크게 떨어졌는데, 청소년 절도의 단골 메뉴였던 카 오디오 같은 물건은 이제 훔치기도 어렵고 훔쳐봐야 가격도 환금성도 낮다. 나아가 음주, 흡연, 임신 등도 줄어들고 있다. “요즘 애들 무서워”를 입에 달고 사는 어른들에게 조금 의아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 등과 비교해 지금의 십 대가 규제와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십 대의 ‘혈기 파이’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부모들의 마법의 문장 “스마트폰에 빠져서 그래”가 여기서만은 일리 있다. 호르몬성 난동이 줄어들었다 한들 십 대에게 난동이 아주 불필요하지는 않다. 문제는 그것의 제공자가 꼭 록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파괴적이고 반항적인 사운드에 몸을 맡기며 지그시 눈을 감는 것보다, 인터넷에서 누군가를 욕하는 것이 더 짜릿할 수 있다. 무대 위의 로커에게서 쾌감을 전달받는 것보다 나의 악플에 사람들이 들썩이는 게 더… 주체적이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음습하다면, 이제는 트롤링의 중심도 SNS로 옮겨갔다. 악플을 달면서도 ‘인싸’일 수 있다.

음악 산업 내부에도 ‘혈기의 파이’를 나눠 먹는 사람들은 많다. 일렉트로닉이 한 예다. EDM이 모든 걸 바꿔놨다. 대형 페스티벌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Put Your Fxxking Hands Up”을 외치는 디제이는 록스타가 되었고, 곡의 구조는 후렴을 중심으로 하는 록을 참고해 단순화시키고 빠르게 자극을 터뜨렸다. 마약과 섹스 등의 일탈적 이미지까지 포함해, EDM은 명백히 록의 자리를 대신하는 음악이 되었다. 즉, 록이 주는 자극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다. 그것이 록일 필요가 없어졌을 뿐이다.

세계인을 상대로 경쟁하는 걸 즐기는 한국인은 록이 불필요한 시대에도 한발 더 나간다. 1990년대는 한국에서 기성세대와 구별되는 십 대만의 소비 문화가 처음 생겨난 시기다. 그리고 이때 한국은 아이돌 산업을 발아시켰다. 아이돌은 록과 인터넷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제공하는 기적의 발명품이었다. 화려한 퍼포먼스와 시끄러운 사운드에 빠져들고, 무대 위 압도적인 존재를 숭상하며, 어른들이 이해 못 하는 커뮤니티를 이루고, 그 안에서 내부의 규칙으로 자신들을 재사회화하는 장이 되었다.(심지어 록의 반사회적이거나 신성모독적인 내용이 주는 ‘위험한 쾌감’마저도 아이돌 산업이 넉넉히 제공하고 있다. 팬들에 대한 사회적 지탄이나 성적 코드, BL 등의 형태로.) 뿐만 아니라 경쟁 구도를 자극하는 이 산업은 매년 <드림콘서트> 등을 계기로 팬들이 세력 규모를 과시하며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게 했고, 음악방송 1위 팬 투표를 통해 그들의 손가락을 운동시켰으며, 매일 라이벌 팬덤을 향해 악의를 쏟아내도록 했다.

물론 아이돌은 십 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워너원의 팬덤 중 십 대는 14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조사가 있을 정도로, 이제는 ‘전 연령 문화’다. 그러나 성숙한 시민의식과 착실한 사회생활을 갖춘 30대 성인도 아이돌에 관해서 만큼은 십 대로 돌아간 것 같은 도취와 공격성을 보이곤 한다. 옛날 록 얘기만 나오면 어린아이처럼 들뜨는 록 팬의 모습이 어쩐지 겹쳐 보인다. 십 대가 향유하는 배타적 희열과 사회를 향한 대결의식, 그리고 마음만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무는 시간. 한국의 십 대 문화에는 록 대신 아이돌이 들어 있다.

그러나 (1990년대풍으로) “아이돌 때문에 록이 죽는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 좀 참을 필요가 있다. 록이 다른 음악으로 대체됐다면 세계적으로 대세를 구가하고 있는 힙합이고,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두 가지, TV와 인터넷이 함께 이를 만들어냈다. <쇼 미 더 머니>와 <고등래퍼>를 두고 이미 많은 논의가 이뤄졌지만, 힙합은 한국의 십 대가 향유하기 좋은 문화 중 하나다. 단적인 예로 장비만 놓고 봐도 그렇다. 전기 기타는 최근 많이 싸져서, 제조사 로고가 선연해 친구들의 비웃음을 사는 엔트리 레벨 제품이 최저가 30~40만원대(앰프와 이펙터 미포함)다. 제조국 표기가 돼있지 않아 가성비 좋게 ‘오 좀 칠 줄 아는 놈인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멕시코산 펜더는 90만원 선이다. 반면 프로 래퍼들도 사용하는 SM58 마이크는 인터넷 최저가 9만원이고, 습작이라면 스마트폰 마이크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힙합을 하는 데는 록처럼 방음장치 된 부동산이나 멤버들과 함께 모이는 시간도 필요 없다. 독서실에서도 가사를 쓸 수 있다. 수많은 스타가 인터넷 커뮤니티를 거쳐서 데뷔했다. 힙합이라면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공격적인 말을 쏟아내도 될 것만 같아, 스트레스도 풀고 주목도 받는다. 아이돌이 제도권의 록을 대신한다면 힙합은 언더그라운드의 록을 대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록의 죽음’이라는 말은 이르다. 이 모든 건 록을 대체할 것이 얼마든지 있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굳이 록을 하는 사람들, 굳이 록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심지어 좋은 록은 계속 나오고 있다. 록을 더 많이 다루는 동료 평론가들도 그들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필요 없는데도 좋은 것을 내놓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록의 논리에서 그것은 고결한 일이다. 경제논리로 이것이 낭비라고 비웃을수록, 그런 불화가 커질수록, 로커의 파이 부스러기는 조금씩 더 빛난다.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파이’를 주문하는 것은 매우 불필요한 일, 그러니까 여전히 멋진 일이다. 글 / 미묘(웹진 <아이돌로지>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