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라거 맥주

캬, 소리가 맥주의 모든 것을 설명하진 않는다. 라거 한 잔, 아니 두어 잔 마시면서 알아둘 만한 온갖 종류의 라거 맥주.

라거의 변
라거와 에일이라는 이분법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라거는 좀 구식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페일 에일이나 IPA 맥주가 큰소리를 내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갈 동안 라거는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수밖에 없었다. 글쎄, 그런데, 라거라고 할 말이 없을까? 라거가 재미없다고? 라거가 밋밋하다고? 라거는 청량감에 마시는 맥주라고? 일단 라거의 꼿꼿한 매력부터 파악하고, 라거의 다양한 맛을 다시 한번 헤아려볼 필요가 있다. 혹시 IPA 맥주가 그간 내 취향이 아니었는데 억지로 넘기고 있었다면, 목마른 코끼리처럼 맥주를 마시고 싶었는데 에일 맥주가 좀 부담스러웠다면, 눈치 볼 것 없이 라거의 세계로 다시 풍덩 넘어오면 된다. 충분히 넓고 깊다.

레드 스트라이프 자메이카 라거 맥주. 잘 구운 쥐포를 먹고 뒤이어 마시는 것처럼 묘한 단맛이 슬쩍 스친다.

카르후 핀란드의 대표 맥주다. 핀란드어로 곰이라는 뜻의 이 맥주는 매서운 곰의 얼굴만큼 몰트의 묵직함이 훅 치고 들어온다.

옴니플로 오리지널 팝시클 필스 스웨덴의 크래프트 양조장 옴니플로는 양조시설 없이 다른 양조장과 협업해 맥주를 생산하는 ‘집시 브루어리’ 중 하나다. 사진 속은 영국의 벅스턴과 함께 만든 맥주로 밀, 귀리, 젖산이 들어가 아이스크림처럼 새콤달콤하다.

 

인터내셔널 페일 라거
두드러지는 향 없이 깔끔하게 여러 잔 연이어 마실 수 있는 맥주가 라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더 정확히는 페일 라거가 자리 잡고 있을 확률이 높다. 격무에 시달린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가 냉장고 속에서 꺼내던 그 술, 스포츠 경기를 보다가 뚜껑을 뻥 따 꿀꺽 마시던 그 술이 페일 라거다. 어느 나라에 가도 발견할 수 있는 맥주들을 특별히 모아서 ‘인터내셔널 페일 라거’라 부르기도 한다. 일본의 아사히, 에비스, 기린, 삿포로부터 하이네켄, 버드와이저, 칭타오, 밀러, 스텔라 아르투어 같은 브랜드까지 두루 이 카테고리 안으로 들어온다. 깔끔하고 개운한 맛과 향이 특징이며 좀 밋밋하기도 하다. 라거 효모는 발효하면서 별다른 향을 더하지 않고 도화지처럼 맛을 받쳐주는 편이다. 반면 에일 효모는 발효하면서 복숭아나 바나나를 연상시키는 확실한 향을 더하는 쪽이니 아예 태생부터 방향이 다른 맥주인 것은 분명하다. 라거에 좀 재미를 준다면 스텔라 아르투아처럼 홉 향을 좀 더 강력하게 내는 스타일로 방향을 조금 틀거나 일본 브랜드처럼 맥아와 홉 이외에 쌀을 추가하거나 미국 브랜드처럼 옥수수를 넣는 식이다. 그렇다고 한들 그 차이는 우물 속 파동만큼이나 잔잔하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쪽이 에일 맥주라면 말이다. 대신 페일 라거는 범용성이 넓고 호불호가 적고 질리지 않는다. 그래서 브랜드 그 자체를 향유하기에도 좋다. 오래된 인터내셔널 페일 라거 브랜드 로고가 적힌 유리잔을 발견하면 괜스레 소장욕이 솟구치는 이유다.

 

3P

필스너와 필스
라거를 논할 때 필스너를 빼놓을 수 없다. 라거 종류 중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필스너는 라거 맥주의 시초이자 체코 필젠 지역의 자존심이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접한 페일 라거와 비교하자면 풀 향과 쌉싸름한 향을 담당하는 홉이 더 강렬한 편이다. 필스너는 원래 필젠 지역에서 체코 보리와 체코산 홉(자츠)이 들어간 것을 일컫는데 이 필스너가 독일로 넘어가서 필스로 통용되고 이것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크래프트 맥주 열풍과 함께 퍼지면서 ‘독일 스타일 필스’라는 장르가 굳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에서 강세인 감귤 향, 자몽 향 같은 과일 향의 홉을 많이 쓴 에일의 펀치에 지친 애호가들이 체코 홉, 노블 홉 향이 두드러지는 (비교적) 가벼운 맥주인 ‘독일 스타일 아메리칸 필스’, ‘호피 저먼 필스’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필스너보다 풀 향과 허브 향이 더 강렬한 편이다.

레이크프론트 필스 전형적인 황금빛의 필스. 탄산이 자글자글 부드럽게 올라오고 풀 향이 강하다. 기분 좋은 쌉쌀함이 혀에 착 붙었다 사라진다.

구스 아일랜드 포스타 필스 시카고의 대표 크래프트 맥주인 구스 아일랜드의 필스. 상쾌하고 개운하다.

빅토리 프리마 필스 미국이 재해석한 독일 필스의 선두주자. 필스너 좀 마셔본 애호가들은 이 맥주 앞에 엄지를 치켜 든다.

퍼글스 앤 워록 픽셀 필스 고동색이 슬쩍 도는 독특한 색깔의 캐나다 맥주. 꽃 향과 같은 홉 향이 감미롭게 퍼진다.

 

4P

이런 라거 저런 라거
모르고 마셨으면 라거인 줄 모르는, 이마과 무릎을 동시에 치게 될 온갖 스타일의 라거를 모았다.

코에도 카라 인디아 페일 라거 깐깐하기로 유명한 일본 코에도의 라거. 필스보다도 홉 향을 더 강렬하게 뿜는 인디아 페일 라거 스타일로 줄여서 IP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버나드 보헤미안 라거 체코 필스너를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표현이 보헤미안 라거다. 홉 향과 몰트의 달콤한 향이 은근하게 조화를 이루는 필스너의 대표적인 맛이다.

모아 화이트 라거 라거지만 밀과 와인 이스트를 더해 독특한 맛과 향을 뿜는다. 처음엔 밀맥주를 마실 때처럼 열대과일 향이 도드라지다가 시간이 지나면 깔끔하게 정리된다.

블루포인트 토스티드 라거 라거 중에 색이 더 붉그스레하고 풍미가 좀 더 묵직한 것이 앰버 라거다. 토스티드 라거는 앰버 라거 계열이며, 블루포인트 양조장의 대표 상품이다.

앤드유니온 노이 블랙 라거 인스타그램에서 사랑 받는 독일 양조장. 그 중 가장 최근에 수입된 것이 이 다크 라거다. 검은색에 가까운 진한 색으로 커피, 초콜릿 향이 난다.

플레이그라운드 더 젠틀맨 라거 최근 소매점 유통을 시작한 일산의 한 양조장에서 만드는 라거. 알코올 도수가 7도를 넘어가는 강렬한 라거다. 소맥에 익숙한 우리나라의 입맛을 겨낭했다는 후문이 있다.

리버웨스트 스타인 앰버 라거 미국의 크래프트 양조장에서 만드는 앰버 라거. 특유의 캬라멜 향이 스치지만 라거답게 청량한 기운을 잃지 않는다.

투올 3X 레이드 라거 투올은 덴마크의 집시 브루어리다. 강렬한 홉 향의 IPL을 만드는데, 그중 중간 세기 정도 되는 것이 3X 레이드다. (5X도 있다.) 이쯤되면 IPA와 구분이 쉽지 않다.

SHARE